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영사황후 하씨 (문단 편집) == 평가 == 미천한 신분에 비해 크게 출세했지만 오빠인 하진이 출신은 미천했을지언정 그 나름대로의 능력이 있던 반면 하태후는 과연 능력이 있는가 크게 의심된다. 하태후는 기 세고 질투 심하여 후궁들이 두려워했다는 대목, 영제의 다른 자식인 헌제를 낳은 왕씨를 독살했다고 되어 있는데 단순히 질투 때문일 수도 있겠지만 출신을 보면 굉장히 운빨이 좋아 출세한 인물이지만 그렇기에 지지기반이 너무 약하고 그런 상황에서 믿을건 황제의 총애와 자신이 아들을 낳고 그 아들이 다음 황제가 되는 것 뿐이다. 즉 본인도 본인 나름대로 살아남기 위해 질투하고 독살하고 했을 수 있다. 문제는 그 방식이 너무 지독했다는 것, 물론 중국사에서 독살을 시도한 황후/후궁은 이 사람 말고도 더 있긴 하지만 사실 엄밀히 말하면 황자는 한 명의 사람이기도 하나 한편으로는 (어쨌든) 황제의 아들이자[* 덤으로 (어쨌든) 혈연은 아니지만 본인에게도 아들 격이 된다.] 다음 계승권도 가지고 있다. 그러니 이왕 일을 처리할 거였으면 조용히 처리하는 것이 맞고 문제가 드러나면 안되는것이다. 오죽하면 영제가 그 행태에 대해서 분노하여 폐하려고 했을까? 이 때 환관들이 아니었다면 꼼짝도 못하고 폐위당했을 것이고 왕씨를 제거하려다 자기도 제거당한 멍청한 짓으로 끝났을 것이다. 동태후와의 대립도 그렇다. 물론 태후가 태후끼리 대결하는 상황도 역사상 많았다. 하지만 이런 류의 문제가 진짜 문제가 되는 예들이 늘상 그렇듯이 뒷처리가 깔끔하지 않았던 것이 문제다. 하태후는 권력을 잡자마자 그래도 명색이 시어머니인 동태후를 즉각 추방하는 횡포를 부리고 이에 동태후는 자결한다. 이에 대해서 백성들이 하태후 탓을 했다는 대목을 보면 하태후의 행각에 대해 백성들의 시선이 곱지 않았음을 짐작할 수 있다. 마지막으로 십상시 문제도 그렇다. 사실 이 때 하태후가 취해야 할 최선은 이왕 일이 하진이 십상시를 숙청하는 쪽으로 돌이킬수 없게 된 이상 십상시를 버리는 것이었다. 당시 하진은 탁류, 청류 가릴 것 없이 지지를 받고 있었고 그런 하진 밑에는 십상시를 처단해야 한다는 사람들이 몰려들었다.[* 대표적인 인물이 바로 [[원소(삼국지)|원소]]다.] 그렇기에 하태후가 십상시를 버리고자 한다면 하진+청류파의 지지로 얼마든지 해낼 수 있었고 반대로 십상시를 옹호한다면 청류파의 지지를 얻을 수 없고 어차피 또 십상시는 끈 떨어진 신세에 자기들이 위험하다고 하진을 죽여버리는 등 하태후에게 충성해서 붙었기보다는 단순히 자신들이 살기 위해 붙은 것이다. 이 십상시 문제에 있어서만큼은 하진도 하태후가 반대하니까 못했을 뿐 원소 등과 생각은 같았다. 이 당시 하태후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하진과 한 마음이 되는 것인데 하태후는 이유가 무엇이건 이를 실행하지 못했다. 아들이 황제가 되고 자신이 태후가 되어 수렴청정을 하는데 녹상서사인 하진 역시 하씨 정권의 최중요 축이다. 하태후를 주체로 보는 시각에서 자기자신인 하태후를 당연히 제외하고 본다면 소제가 크기 전까지 가장 중요한 사람은 녹상서사인 하진이다. 설령 하태후가 훗날의 측천무후처럼 최고의 자리까지 올라갈 수 있다고 해도, 어쨌건 그 시점에서는 하진과 협력을 해야만 한다. 십상시 역시 성공한 2차 하진 제거 시도를 제외하고 봐도 1차적으로 건석의 하진 제거 시도는 하태후에게 있어서도 상당히 중대한 위협이었다. 이 시점에서 하씨 정권은 권위의 근원인 황제의 어머니 하태후와 그 권위를 잘 휘두르고 인심을 모으는 능력을 가진 하진 이 두 축에 의해 굴러가는 것인데 하진을 제거하는 시도는 당연히 하태후에게 있어서도 큰 위협이 되는 것이다. 물론 하태후는 어쨌건 자기가 권위의 근원인 황제의 어머니고 그 시점에서 십상시고 하진이고 다 최중요인물인 나의 간택을 받는 것이라고 생각할 수 있다. 그리고 어느 정도 정치의 모양새가 만들어지고 돌아가는 것보다 자기가 더 사치할 수 있고 권세를 부릴 수 있고 아첨을 많이 받는다던가 하는 게 하태후의 가장 중요한 목표일 수도 있다. 그리고 그 목표에는 하진보다 십상시가 더 좋은 파트너일 수도 있다. 아니면 최소한 하진과의 연립정권에서 자기가 쫄려서 십상시라는 장치를 하나 더 두고 싶었을 수도 있다. 20여년 전의 두태후와도 비슷한데 하태후나 두태후나 환관들을 제거하는 선택을 하지 않은 것을 보면 결국 이들은 황제의 대리인으로서의 권위를 휘두르는, 상당히 황제와 일체화한 인물들이고 특히 태후들이기 때문에 더욱 궁 안의 인물이자 황제에게 무조건적으로 기대는 환관들이 유용한 카드였을 수 있다. 이렇게 하태후 중심으로 생각해본들 하태후는 실패한 인생인 것이 제아무리 황후가 됐고 태후가 되어서 최고 권력자 반열까지 올랐다 해도 상당히 젊은 나이에 비명횡사했으며 그것도 다 자기 탓이다. 결과적으로는 하태후는 하진 세력과 십상시 사이의 긴장을 원활히 조율하지 못했고, 둘 사이의 갈등이 막장과 파국으로 치닫는 것도 감지하지 못하고 가볍게 생각한 것이 하태후다. 두 세력 사이의 갈등이나 파국을 조절할 수 없다면 자기가 지지를 보내는 곳이나 운명공동체를 한 세력으로 결정해야 하는데 그것도 하지 않았다.[* 이런 것은 두태후나 하태후나 마찬가지긴 하다.] 그리고 상술되었듯이 하태후의 암수나 급수는 죄다 무리수에 운빨에 기대는 것들이었다. 애초에 하태후가 거기까지 올라올 수 있었던 이유도 미모를 타고났다는 거 하나, 또 오빠인 하진이 재산도 있고 야심도 있고 능력도 좋았다는 거 친오빠 잘 타고난 게 하나였다. 물론 자기 나름대로 궁궐 안에서 여러 가지 노력도 했겠지만[* 사실 노력 없이 사는 인간이 어딨는가? 다 어느 정도의 노력은 하고 아무 노력도 없이 사는 인간이 있다면 그게 더 신기한 케이스다.] 객관적으로는 최고의 사회적 지위를 가지는 데 있어서 모든 원인이 운빨인 인간이 하태후였다. 그나마 태후가 되기 전까지는 상당히 운도 따르고, 하태후와 이익을 공유하는 다른 사람들의 노력으로 어찌어찌 커버가 되었으나 최고의 자리에 올라서는 판단과 결정에 있어서 중간치기도 못하고 금세 몰락해 버렸다. 결국 하태후가 십상시를 택한 결과 하진은 십상시를 처단할 기회를 놓치고 대신 군웅들을 부른다는 선택지를 골랐고 그 군웅이 오는 사이 십상시는 하진을 암살했으며 그나마 십상시를 죽이고자 하는 이들의 마지막 브레이크이던 하진마저 없으니 그들은 대놓고 십상시를 비롯한 환관들을 죽여댔다. 직후에 도착한 동탁은 십상시도 없고 하진도 없는 상황 속에서 정원을 죽이고 그의 군사와 밑에 있던 여포에 하진의 군사까지 흡수한 후 그 힘으로 소제와 하태후를 폐위시켰다. 하태후 입장에서는 그리도 미운 왕씨의 아들이자 동태후가 지켜주던 유협을 황제로 옹립했으며 끝내는 하태후와 그 아들인 소제를 죽였다. 그 지위에 비해 능력이 지나치게 모자랐고 인품도 안 좋았다.[* 그나마 하진이 죽지 않았다면 다행인게 동탁이라고 해도 하진에게 덤빌 순 없을 것이니 십상시들만 숙청당하고 끝났을 것이다. 그러나 그 십상시들의 편을 들어주던 하태후는 어떠한 형태로든 발언권은 약해졌을 것이다.] 이 사람의 재주는 결국 얼굴 이쁜 거, 오빠 잘 둔 거밖에 없었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